'칙칙 폭폭'
언뜻 들으면, 기차 소리 같다. 난 이 소리를 8 살때부터 지금까지 항상 들어오고 있다. 그것도 도심 한복판에서.
다름 아닌 '압력밥솥' 소리다.
요즘에야 전기 압력밥솥이 나와서, 이런 소리를 듣기 힘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내 어린 날엔 이 소리야말로 내 '군침'의 전부였다. 원래 할머니는 솥으로만 밥을 지었다 .어느날 괴상하게 생긴 솥 단지를 들고 들어오신 걸 보고 식구들은 의아해 했다. 저게 무슨 솥일까?...? 그리고 모두들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집에 있는 것을 두고 다른 솥을 사올 분이 아닌데... 그러나, 그 압력솥이 수 년간 충성을 바치던 다른 솥을 제치고 우리 집 부엌에 진출했던 그 사건의 발단은 아주 간단했다.
친구 분 댁에 놀러간 할머니는 그 집에서 맛있는 식사를 대접 받았던 것이다. 특히 밥이 아주 맛 좋았는데, 시집온 며느리가 압력솥으로 지었다고 했다. 그 길로 내 손을 이끌고 시장으로 간 할머니는 온 시장을 샅샅히 뒤져서 제일 튼튼해 보이는 압력솥을 샀다. 압력솥에서 김을 빼내는 꼭지도 빨간색으로 골랐다.(정열적인 우리 할머니1x)
그날, 처음 밥을 하던 날을 난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식구들은 처음 보는 이 물건을 보기 위해 평소엔 얼씬도 안 하던 부엌으로 모여 들었다. 어느새 '딸랑 딸랑' 솥뚜겅에 달린 방울은 하얀 김을 조금씩 토해내며 까딱이기 시작했다. 어느정도 지났을까? 아까 그 딸랑이 방울은 '쉭쉭'소리를 내며 몸을 마구 마구 흔들어 갖가지 춤을 추어 대기 시작 하였다. 식구들은 경탄해 마지 않았다. "이야1x 대단하다1x""확실히 압력이 높으니까, 밥도 빨리 되는것 같고... 아마 밥맛도 좋겠지?"
우리 모두는 그 순간, 아이를 처음 갖는 아빠들의 마음같이 마음을 조이고 있었다. 물론 다 같은 밥이겠지만, 저마다 윤기가 다를거 라느니, 더 통통해 보일 거라느니 떠들 대기에 바빴다. 할머니가 듣은 사용 방법은 그 조그만 방울이 쉴새 없이 움직이면 거의 밥이 다 된 것이고, 그 후 5분 정도 불을 낯춰 뜸을 들이라 했다. 뜸들이는 그 5분이 어찌나 길게만 느껴지는지, '꿀꺽' 침 삼키는 소리만 부엌 여기 저기서 울리고 있었다.
"자1x 다 됐다1x" 할머니가 선언하자, 저마다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곤 할머니는 천천히 뚜껑을 돌리기 시작했다. 사실 예정대로라면, 그 다음 순간에 행복의 나라는 다름 아닌 압력솥과 함께 온다고 믿고 있어야 했다. 그러나 누가 알았을까? 우리는 새악시 살꽃 마냥 하얀 밥을 보긴 커녕 혼비백산하고 말았다.
"뻥1x"
그 소리가 지붕을 들썩인 것이다. 모두 어안이 벙벙, 눈앞에 별이 왔다 갔다 했다. 다들 어리둥절하는데, '아차'하며 할머니가 무릎을 치셨다. 그랬다. 원래 압력솥᎐ 밥을 다 한후에 '후크'를 젖혀서 김을 모두 빼내야 했던 것이다. 그 전에 뚜껑을 열면 같여 있던 폭팔할 것같은 압력이 이렇게 터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초보자 압력뚜껑 운전수였던 할머니가 그만 깜박하고 말았던 것이다.육중한 뚜껑은 다행히 앞으로 튀겨나가 벽에 굵은 상처만 냈을 뿐, 식구들을 안전했다. 문제는 밥이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오실토실한... 그 밥알들이...
'마술 솥 단지였나?'
큰 소리에 식구들이 두눈을 질끈 감는 사이, 밥들이 죄다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나, 곧 우리는 밥의 행방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밥알이 툭툭 떨어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밥알들이 하늘로 치솟아서는 부엌 천정에 옹기종기 붙어 있었던 것이다. 천천히 고개를 들던 우리 식구들은 천정에서 반갑게 'Hi'하는 밥알들을 보며 동시에 이렇게 말했다.
"썅1x"
(썅1x이 너무 심했다 하는 분들은 우리 식구들의 거친 입을 탓하길.)
어쨌든 그 후로, 우리집에서 이런 실수는 두번 다시 볼 수 없었다. 그리고 언제나, '칙칙 폭폭'하는 압력솥 소리를 들을 때면, 식구들은 간혹 은근히 미소짓곤 한다. 그리고 나는 그런 식구들을 볼 때 마다, 우리들 마음이 따뜻한 밥공기처럼 행복하리라 즐겁게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