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초반 어느 저녁에 멋진 스포츠카가 거리에 멈춰 섰다. 차 속에 전화가 있는 것을 보고 나와 다른 아이들은 신기해 어쩔 줄 몰랐다. 차 속에 있는 전화는 스탁 부로커들이 증권 거래를 하기 위해 주로 적절한 시각에 맞춰 걸어지는 상당히 중요한 통화임에 분명했고, 전화를 차안에서 걸 수 있다는 아이디어는 정말 기발하게 보였다.
Sell1x Sell1x 하던 것이 요즘에 들어와서 Cell1x Cell1x 이 되어 버렸다. 도처에 널려있는 것이 셀 폰 인데 이 무선 전화기를 어느 곳에서나 사용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 옆에 있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많은 사람들이 누가 옆에 있거나 말거나 담배 불을 켜대던 시절이 생각나는데 요즈음엔 많은 사람들이 중요한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도 셀 폰을 거침없이 받고 있다. 전철에서 낮잠을 자고 있을 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아니면 영화관에 앉아 영화 감상을 하는 도중에도 어떤 몰지각한 사람들이 옆에서 셀 폰으로 떠들어 대고 있는 것을 본다.
더욱이 기가 막 힐 노릇은 비데오 테입 반환하는 것을 상기 시켜준다는 명목으로 불럭버스터 비데오 가게 같은 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나, 전혀 응급 상황이 아님에게도 불구하고 마구 전화를 해대는 것이다.
문제는 전화 기술이 지역의 한계를 받지 않고 도약적으로 발달 되어진데 반해 사람들의 상호관계는 그것에 맞지 않게 발달 되어가는데 있다. 다듬어지며 발전되는 과정이 따르기보다는 지껄이는 것에 더 신경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다시 걸 수 있는 곳에서 전화를 하는 것일까? 흔한 예로"야, 너 내가 지금 전화 어디서 거는 줄 아니? 나 지금 차안에서, 비행기에서, 아니, 스페이스 로켓트 안에서 거는 거야."라고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최근에 들어 전화가 걸려오는 것을 노블하게 생각되는 것은 말할것도 없고, 셀폰을 사용하는 것이 상승 신분을 하는 것처럼 되어졌다. 어떤 사람은 꼭 누구에게 전화를 걸러야 직성이 풀리는 것을 넘어 남에게도 반드시 즉각 셀폰으로 전화를 해서 일일이 고해 바치도록 강요한다.
얼마전에 들어서야 우리 집에 전화를 버튼을 눌러 작동하는 것으로 바꿨는데 나도 내가 최신식 전화 시스텀을 빨리 도입하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한다. 첨단 전화 기술에 민감한 편은 아니지만 나도 셀폰이 긴급한 상황에 연락을 할 수 있고, 얼마나 유용하게 쓰여지는가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다만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의 일상생활 대화를 전화기를 통해 듣는다는 것은 사양하고 싶다. 그런 이야기라면 공중석상을 피해 집에서 하던가 비교적 푸라이벳한 장소로 공중전화를 이용하는 것이 어떨까? 남이 피는 담배연기를 맡아 해를 입는 것과 같이 마구 지껄여대는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은 용납이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는 셀폰제작에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