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철, 한국에선 창호지를 새롭게 바를 때다. 지난 일요일은 날을 잡아 창호지를 발랐다. 조카가 어찌나 재미있어 하는지 하루종일 즐겁게 지냈다. 저도 거든다고 고사리 손으로 이것저것 집어주고 참견하여 깔깔거리고??어린 애가 더 바빴다. 모처럼 조카와의 협동이었다.
창호지에는 안팎이 있다. 거친 쪽과 반들거리는 면이 안팎을 이룬다. 반들거리는 면에 풀칠을 해서 창살에 바른다. 젖었던 종이가 햇볕에 말라 탱탱해지면 창호지 바르는 일은 끝이나지만 문풍지를 가지런히 해야한다든지 손잡이를 매만져서 쓸모있게 하는 일이 이어진다. 곰살 궂고 재치있는 사람은 단풍잎이던가, 눌러 두었던 나뭇잎을 넣고 싸발라 모양을 아름답게 하기도 한다. 일이 끝날 즈음, 조카는 손으로 창호지를 튀길 때 나는 소리에 재미가 들었다. 한참 소리를 내더니 무슨 생각에서인지 손바닥으로 쓰다듬어 본다. 그러더니 볼을 살며시 대고 비벼댔다.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지는 모양이다. 그만큼 한지는 만든 사람들 심성 만큼이나 질박하고 덕성스러워서 저절로 매만져 보거나 쓰다듬거나 비벼 보고 싶어진다.
한국 사람들은 창호지를 창살이 밖으로 향하게 안쪽에 바른다. 그러나 일본은 우리와 정반대다. 창살이 안으로 보이게 창호지를 밖으로 도배한다. 창호지는 살대에 의지해서 바른다. 살림집 정사각형 미닫이는 창살이 드물어서 종이 바른 공간이 넓다. 살이 차지하는 면적이 좁아 방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그만큼 넉넉하게 받아들인다. 재주있는 목수는 여러 가지로 아름다운 무늬로 창살을 만든다. 그래서인지 창살 모양은 아주 다양하다. 때문에 장식이 거의 없는 동양의 살림집에 변화를 준다. 어떤 집에서는 사랑채에만 십여종의 창살을 채택하기도 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니까 말이다. 창호지 바른 미닫이, 얇은 깁을 바른 사창(방충망)이나 맹장지(앞뒤로 싸바른 창), 그리고 창살이 치밀하게 조립된 덧문만 해도 벌써 창살이 여러 가지이다. 이들은 한 자리에 여러겹으로 설치되는 것들인데 쓰임에 따라 제각기의 모습을 하고 있다.
"누가 오시는구나" 반가워 얼른 좌우로 밀어 여는 창이 미닫이다. 머름대 위에 설치되어 있다. 얇은 창호지를 발라서 밝고 명랑하다. 달빛이 밝으면 마당에 핀 꽃으로 해서 우련하게 붉어지는 창이다. 얇은 갑사같은 천으로 바른 것이 사창이다.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어 들어서 방안에서 잠든 아기의 땀을 씻어준다. 날아드는 벌레도 막아주어 깊은 잠을 잘 수 있게 한다.
손오공이 놀았다는 화염동. 그 서성에 갔다가 한국과 거의 비슷한 창살의 창을 단 집을 보고 놀랐다. 너무나 흡사하였기 때문이다. 같은 유형의 창살을 꾸민 이슬람사원도 있었다. 그런 창살무늬가 이 지역에 보편적으로 보급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덧창에서는 띠살무늬를 쓰는 것이 보통이다. 같은 계열의 띠살무늬 창도 역시 그 고장에 있었다. 띠살무늬는 아래 위로 긴 살대를 10-13개 세워 꽂는다. 장살이라 부른다. 그 장살의 위와 아래 그리고 중심부에 3-5-3 또는 5-7-5의 수로 짧은 살대를 가로 지른다. 동살이라 하는데 이렇게 조성된 치밀한 무늬로 덧창을 만들면 외기를 차단하는 기능을 한다. 한국처럼 고급 띠살무늬 창에는 훨씬 미치지 못하긴 해도 서양에도 그런 무늬의 창역이 있다. 전에 유구에 가서 본 상왕의 초상화에 묘사된 띠살무늬 창을 기억하고 있어서 띠살무늬의 분포도 만만한 것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한다. 완성된 창을 제자리에 달았다. 손자는 대견한 듯이 여러번 여닫아 본다. 열면 밖이 내다보이나 닫으면 만사를 가린다.
이미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