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번째
이틀이 지나셔 였을까, 그에게 전화가 온 것이.
"김하린씨 부탁드립니다."
"네, 전데요."
난 그 순간 숨이 멎는 줄만 알았다. 분명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 오는 목소리는 확인하지 않아도 그라는 사실을 난 벨이 울리는 순간부터 감지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하마터면 난 그때 수화기를 떨어 뜨릴뻔 했다.
"아 하린씨, 잘 있었지요. 어떻게 지내세요. 통 연락도 없구요. 오늘 시간 있으시면 저녁이나 할까요?"
"저, 죄송한데요, 오늘은 일이 있어서요. 그럼 ..."
그냥 그러고 싶었다. 처음으로 함께 모텔에 들어간 남자가 첫번째 데이트 신청을 했을 때 그냥 한번쯤 튕겨 보고 싶었다. 사실은 그의 얼굴을 다시 한번 보고 나면 난 영원히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리고 나면 그땐 내 자신도 추스를 수가 없을 것만 같은 어지러운 예감, 그런 예감 때문에 난 그날 그의 데이트 약속을 거절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난 이미 알고 있었다. 피해 갈 수 없는, 아니 내가 간절히 그를 원하고 있음을.
N선배에게 전화가 온 것은 바로 그 다음날이었다.
"야, 임마 왜 어제 나오지 않았어. 그때 그 멤버 뒷풀이겸 다시 모였었는데, 너만 안나왔더라,"
"네, 그냥요. 조금 몸이 않좋아서요. 어제 무슨 일이었다구요?"
그는 나만을 보기 위해 연락을 한 것이 아니였던가. 나는 잠깐 어지러움증을 느꼈다.
"야, 이번주 토요일 날은 어때? 우리 음악 들으러 카페에 놀러갈거야. 바람 쇄러. 같이 가자. 그 멤버 그대로다."
혼자 말을 끝낸 선배는 내 대답을 듣지도 않고 수화기를 내려 놓았다. 그 주 토요일, 나는 서둘러 약속 장소로 향했다. 거울 속에 비친 나의 모습은 선머슴아 처럼 짧은 커트 머리에, 여성미라고는 전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리 매력적이지 않은 모습이었다. 아무리 애써 꾸미려고 해도 그 짧은 머리로는 도저히 어떻게 힘을 쓸 수가 없었다. 끝내 나는 모자를 눌러 썼던 것 같다. 그 자리에는 여전히 영이라고 불리우는 빨간 립스틱의 여자가 먼저 자리하고 있었다. 하늘거리는 소재의 치마바지를 입고, 긴 생머리를 허리 까지 늘어 뜨리고 나온 그녀의 모습은 여자인 내가 보기에도 튀는 모습이었다.
한 20여 분이 지나서 였을까, 그가 나타났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그가 문을 열고 들어오는 그 순간을 난 놓치지 않았다. 그 순간 난 또 가슴이 멎어버렸다. 그리고 애써 그를 외면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채 날 아는 척 했다. 그날 밤 우리 둘만의 사연은 그저 꿈 속에 있었던 것 처럼 표면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말이다.
그날도 그는 여전히 영의 옆에 있었다. 처음엔 그가 나를 보는 것이 쑥스러워 일부러 그러는 것이려니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는 내게 데이트를 제의해 오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헤어지는 시간이 될 때까지도 그는 내게 별다른 관심을 보내 오지 않았다. 우리는 카페에서 통기타 가수의 흘러간 노래를 들으며 앉아 있었다. 물론 그 음악 소리가 내 귀에 들려 왔을 리가 없다. 나의 귀는 그를 향해 열려 있었으므로.
영의 집은 그곳에서 5분 거리에 있었다. 12시가 다 되었을 무렵 그녀는 나른 한 듯 자그마한 손가방을 들고 일어섰다. 동시에 그도 따라 일어섰다. 자리에 앉아 그들의 일방적인 행동을 지켜 보고 있는 것은 나와 N선배 뿐이었다. 난 그때 울고 싶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를 다시 자리에 앉히고만 싶었다. 그녀가 홀로이 빨리 이 자리에서 사라져 주기만을 나는 눈을 꼭 감고 기다리고만 있었다. 그때였다. 나의 모자가 확하고 벗겨졌다. "야, 넌 왠 밤에 이런 모자를 쓰고 있니? 선머슴아처럼, 야, 오히려 나한테 더 잘 어울린다. 야."
그 사이 그녀는 이미 문을 열고 사라지고 없었다. 그는 N선배가 잠시 한눈을 파는 사이 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 손에 모자를 쥐어 주었다. 그는 분명 눈으로 내게 무슨 말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난 그 의미를 알지 못했다. 단지 그가 그녀가 나간 문을 따라 서&
#46168;러 밖으로 나갈 때까지 멍하게 그의 뒷모습을 바라만 보았을 뿐.
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