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지는 않았지만 경찰이 내민 손위에 올려진 지갑을 나는 본다. 경찰관은 지갑 속에서 얼마간의 범칙금(?)을 꺼낸 후 남자에게 지갑을 돌려주었을 것이다.
나는 먼저 지갑을 꺼내는 사람이 좋다. 식사 후에 먼저 일어서서 계산서를 들고 나가는 사람의 뒷모습은 커다란 지갑이 성큼성큼 걸어가는 것과 같은 감동적인 그림이다. 그 감동적인 광경은 많은 여성들에게 유효하므로 우리는 그로부터 그의 수많은 애인들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도 같다. 특히 동양 사람들은 남녀가 데이트할 때 남자쪽에서 그 비용을 모두 지불하는 것이 예의로 되어 있다. 때문에 여성으로부터는 물 한잔도 공짜로 얻어 마시지 않는다는 게 '사나이의 원칙'이란 말도 나돌 정도다. 물론 관습이 만들어낸 생활 스타일이지만, 그래서 동양 남자들은 지갑이 텅텅 비어있을 때에도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여성을 동경하곤 한다. 몇 년전에는 그러한 유행가사가 담긴 노래(변진섭- 희망사항)가 히트하기도 했었다.
영화〈귀여운 여인 (PRETTY WOMAN)〉(주연: 리처드 기어, 쥴리아 로버츠)에서도 보라. 리처드 기어의 지갑 속에서 돈을 꺼내는 솜씨는 스크린 앞에 앉아있는 세계의 뭇 여성들에게 동경의 대상이었다. 일류 호텔과 레스토랑의 지배인을 꼼짝 못하게 만드는 리차드 기어의 지갑 꺼내는 솜씨, 그리고 멋진 의상과 구두로 쥴리아 로버츠의 마음을 사려하는 그는 결국 진정한 사랑의 마음으로 그녀 곁에 다가서는 헤피엔딩이지만, 어쨌든 영화를 보고 나서도 오래도록 리차드 기어의 지갑 꺼내는 솜씨가 기억되는 영화 가운데 하나다.
'지갑'은 물론, 호주머니 속에 있기 마련이지만, 나는 가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갑을 보곤 한다. 그러한 시간들은 주로 돈의 매커니즘이 적용되는 시간이며, 그 시간이 어떤 것인가를 파악하는 것은 위악을 가리는 일처럼 단순하지 만은 않다. 심리적이며 사회적이고 '계산적'이다.
경제력이 종종 지갑의 가치와 혼용된다는 가정 아래서 보자면 지갑을 빈번히 드러내는 이유도 그것을 숨기는 이유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