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삼촌 내외는 동갑내기 부부다. 결혼할 때도 티격 태격 말이 많았지만, 살아가는 모습도 여느 동갑내기 부부 부럽지 않게 티격 태격이다. 그런 작은 삼촌댁이 결혼 생활 12년만에 자기 집을 장만하게 되었다. 물론, 12년만의 '내집'이니 식구들을 불러 성대한 집들이를 할 판이었다. 게다가 집들이를 하루 앞두고 우리 철없던 삼촌이 갑자기 전화를 걸었으니, 감사할 수밖에. "오늘 잠시 들러라. 이사할 때 고생했는데, 양복 한 벌 사줄께. 집들이 할 때 입고 오면 좋잖아." 조카를 향한 삼촌의 사랑으로, 그렇게 양복을 한벌 장만한 나는 숙모의 저녁식사 초대에 황송히 따라가게 되었다. 저녁식사중 삼촌의 새집 자랑은 끝이 없었다. 그 중에서도 경치, 특히 창밖으로 바로 내다보이는 예쁜 동산에 대한 자랑을 딸자랑 하듯 했다. 더우기 삼촌은 그 동산에 상추, 깻잎등을 심어두었으니, 언젠가 농약없는 맑은세상을 맛보여 주겠노라 약속했다. 그러나 이때까지만 해도 난, 이렇게 정답고 즐거운 시간 뒤에 오늘의 메인 이벤트가 숨어 있을 줄은 꿈에도 상상을 못하고 있었다.
식사후, 숙모의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렸다. "여보, 이제 시작해야지?" 나는 그 날 밤, 양복 한벌이 얼마나 비싼 것인지 뼈저리게 맛볼 수 있었다. 삼촌댁엔 책이 굉장히 많았다. 방 두개중에 하나는 그야말로 서재여야 했다. 문여닫는 곳 빼고는 책장이 온방안을 두른 후에야 겨우 정리가 되는 곳. 그곳이 바로 작은 삼촌댁이다. 이사를 가더라도 이삿짐의 삼분의 일은 바로 책과 책장이었다. 어쨌든, 동갑내기 삼촌댁의 계획은 이러했다. 이미 자리잡은 서재와 안방을 뒤바꾸자는 것이다. 그리고, 방을 바꾸는 일이야말로 멋진 조카가 이 땅에 태어난 사명이자 임무라는 것이었다. 물론 한쌍의 잉꼬부부는 마치 준비한 듯한 대화를 주고 받는걸 잊지 않았다. "여보, 아무래도 오늘 양복 너무 잘 산것 같지?" "그럼1x 딱 저거 하나 있더라구. 임자 만난거지." 이럴때면, 이 대화의 숨은 뜻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똑똑한 아들로 낳아주신 어머니를 원망하게 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양복은 받았고, 바지까지 딱 맞게 줄여놨는데. 삼촌 내외의 미소짓는 표정은 이렇게 웅변하고 있었다. "양복을 받은 이여, 책장을 옮겨라1x"
저녁을 먹은 후니, 시간은 8시 정도. 그토록 아끼는 조카에게 메인 이벤트에 대한 얘기를 전혀 하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인지, 따질 여유도 없었다. 몇시간이 지났을까? 깊은 새벽에 대충 작업이 마무리가 되었는데, 바로 여기서 손발 잘맞던 동갑내기 부부는 빙산에 부딪힌 타이타닉 마냥 기우뚱 거리기 시작했다. 문제는 간단했다. 숙모는 책장하나가 차지한 곳이 영 맘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해결은 간단치가 않았다. 작은 삼촌은 그 자리가 가장 좋다고 열변을 토했기 때문이다. 결국 누가 옳은지 보기 위해, 숙모의 자리로 옮겨 보기로 한 우리 작은 삼촌 왈, "거봐1x 아까 자리가 훨씬 보기 좋지." "그런가?" 작은 숙모는 약간 겸연쩍은 듯 대답했다. 물론, 우리는 원래 자리로 책장을 옮겼야 했다. 그러나, 숙모의 입에선 또다시 폭탄 선언이 터져 나왔다. "아냐. 역시 아까 그쪽이 나아. 문 뒤쪽으로 다시 옮겨봐."
난 그 날이후, 남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고집'과 '줏대'라고 서슴치 않고 말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까지 중요한 덕목이 무엇인지 모르고 있었고, 삼촌은 남자에게 필요한 덕목이 마치 몇 번이고 책상을 옮길 수 있는 '근력'과 '지구력'이라는 듯, 열심히 책장을 옮겼다. 다 옮긴후, 내 입술은 숙모의 놀라운 식견을 찬양하기 바빴다. "역시 숙모자리가 나은거 같네요. 여기가 훨씬 방이 넓어 보여요." 물론, 이번 한번으로 마무리 짓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한번 삼촌자리로 돌아갔다고 하면, 과연 몇명이나 믿어줄까? 진실은 믿건 안믿건 진실이니, 말해 주겠다. 정확히 한번 더 삼촌자리로 갔다가, 다시 숙모자리로 돌아갔다.
아침 일찍 집으로 향한 나는, '삐끗 삐끗' 비명을 지르는 뼈마디를 달래기 위해 결국 사우나를 찾아야 했다. 그리고 잠시 눈을 붙이면서도, 그 아름다운 꿈의 궁전에서 꽃처녀들과 책만 옮겨야 했다. 손목 한번 잡아보질 못한채. 저녁 7시. 식구들과 함께 삼촌댁을 다시 방문했다. 피와 땀의 결정체인 임자 잘 만난 양복을 입고. 이미 식구들은 알고 있었다. 내가 양복 한벌에 팔려가서 '요셉'이 당한것 보다 더한 고난을 이겨내고, 작은 삼촌의 서재에 기념비를 새웠음을. 벌써부터 모두들 도대체 어떤 자리에 어떻게 놓였을까, 몹시 궁굼해 했다. 그러나, 작은 삼촌댁의 문이 열리는 순간, 식구들의 비명소리가 그 예쁜 동산으로 울려 퍼졌다. 서재에 있어야 할 책장들이 거실에서 뒹굴며,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던 것이다. 삼촌 내외는 책장들을 거실에 놓기로 막판 뒤집기를 한 것이다. 시기도 좋았다. 마침 도움줄 사람들이 많이 올테니.
결국, 그 날 집들이는 집정리가 되고 말았다. 이쯤되면, 모두들 혀를 내두를 것이다. 하지만, 난 보았다. 그토록 티격태격하는 삼촌 부부지만, 그 속에는 누구든 느낄수 있는 애정이 담겨있다는 것을. 조그만 말다툼에 잠시 언성이 높아졌다가도, 결국은 말꼬리 끝에 미소를 흘리며 웃고야 마는 작은 삼촌 내외. 책을 옮기면서 어쩌다 손이 마주치면 남몰래 얼굴 붉히는 동갑내기 삼촌 부부. 그런 두분을 보게되면, 고생한 기억은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다. 그리고, 보는 사람마다 붙들어 가며 이렇게 속삭여 주고 싶게 된다. '역시, 이런 맛에 살아가는가 봐요.' 라고 말이다.
어쨌든, 그런 작은 삼촌댁에서 또 전화가 왔다. 고기를 구을테니 오라는 것이다. 언젠가 말했던 농약 없는 야채도 듬뿍 먹여 주겠다고 한다. 물론 우리 식구들은 '함정'이라느니, 이번엔 고기에 팔려가 야채는 고사하고 황소처럼 밭을 갈아야 할지도 모른다느니 말이 많았다. 하지만, 항상 불러주고 찾아주는 '티격 태격' 삼촌내외가 보고 싶어, 오늘도 나는 집을 나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