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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병과 함께 사라지다.

누구나 풋풋한 첫사랑의 기억쯤 하나씩 있는 법이다. 또 많은 경우, 그와 같은 기억들은 아주 어린 나이까지 거슬러 올라가기도 한다. 내가 '진아'를 처음 만난 건, 할머니 손에 이끌려 동네에서 제일 큰 유치원에 갔을 때였다. 이미 할머니에게 한글 읽는 법이라던가 간단한 산수를 일찌감치 깨우쳤던 나는 사실 그 당시의 유치원은 따분하기 그지없던 곳이었다. 하지만, '가갸거겨', '아버님', '어머님'을 따라 외치면서 힐끔 힐끔 쳐다보았던 '진아'의 예쁜 모습들은 아침마다 할머니가 깨우지도 않아도 벌떡 일어나서 부랴부랴 유치원에 갈 준비를 하곤 했던 이유였다. 하지만, 난 그런 아름다운 유치원을 결국 그만두고야 마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을 얘기하자면, 나의 부끄러운 과거사 한 토막을 꺼내어 놓지 않으면 안될 듯 하다. 당시, 유치원에 다니는 나이는 한국나이로 7살. 미국나이로는 5-6살이다. 물론, 그 때쯤 되면 유치원에서 나오는 급식들에 익숙한 법이며, 어떤 아이들은 그 간식들 때문에 유치원에 빠지지 않으려 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나, 부끄럽지만 그 당시 나는 아직 '젖'을 못 때고 있었다. 금방 감이 안 올 테니 좀 더 설명을 하겠다. 다시 말하면, 약간 극성이시던 할머니는 정성스레 '젖병'에 분유를 타서 쉬는 시간쯤 몰래 내게 먹여주시고 가시곤 했던 것이다. 그때의 나는 그것이 부끄러웠지만, 우유를 먹는 일 또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할머니는 매일 같은 시간이면 유치원을 찾아오시곤 했다. 물론, 할머니의 '젖병작전'은 은밀하며 비밀스럽게 이뤄졌고, 시간만 되면 난 힐끔거리며 유치원 정문 쪽을 보곤 했다. 그렇게 비밀스레 상봉한 할머니와 손자는 그들만의 따뜻하며, '젖비린내 나는(?)' 시간을 갖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턴가 유치원의 아이들이 이상한 낌새를 채기 시작했다. 일정한 시간만 되면 내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곧 행복한 표정이 되어서는 돌아오니 말이다. 아마도 아이들끼리는 무언가 작전을 새웠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그걸 모르는 나는 그날도 할머니와 눈을 맞춘 후 조심스레 우리의 비밀 장소로 갔다. (비밀 장소래 봤자, 유치원 뒷골목이었다.) 그러나 어찌 알았을까? 한참 맛나게 젖병을 빨던 나는 그만 기겁을 하고 말았다. 유치원 아이들이 줄줄이 나와서는 젖병을 문 나를 보고 '깔깔깔'하며 웃고 있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무척 당황해 하셨다. 담 너머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를 듣고 선생님들도 뛰쳐나오고 난리도 아니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가까이 오지도 않은채 저만치 먼곳에 서서 저희끼리 서로의 배꼽이 제대로 있는지 확인하고 있었고, 선생님들은 7살이라는 나이에 젖을 못땐 아이가 있다는데 대해 놀라움과 즐거움을 가득 담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날, 나의 가슴에 커다란 대못을 꽂은 것은 아이들의 웃음소리도 선생님들의 놀란 표정도 아니었다. 바로 진아였다. 진아가 젖병을 '쭈쭈' 빨던 내 모습을 본 것이다1x 그 어여쁘던 아이의 눈가에 웃음이 자르르 번지기 시작했다. 난 어린 나이였지만, 그 웃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이튿날부터 난 유치원에 안 간다고 떼를 썼다. 아이들과 선생님, 특히 진아를 다신 보고 싶지 않았다. 내 풋풋한 첫사랑은 젖병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결국 난 그 후로 유치원엔 나가지 않았다. (굳이 말하자면, 유치원 중퇴다.) 그리고 물론 그 날부터 오늘까지 젖병을 입에 대본 적이 단 한번도 없다. 요즘도 가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첫사랑 얘기를 그렁그렁 늘어놓기 마련이다. 저마다 첫사랑 얘기라면 소설책 몇 권은 나온다는 듯, 말도 많고 사건도 많다. 하지만, 내 얘기를 할 차례가 되면, 나는 의례 이렇게 말하곤 웃어버린다. 그들이 당황하거나 말거나 말이다. "내 첫사랑? 젖병과 함께 사라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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