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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 인 장

우리집엔 천덕꾸러기 선인장이 하나 있습니다.

생긴것도 이상하고, 이름도 모르는 그 선인장은 지난 20년간 묵묵히 한 자리를 지켰습니다. 처음 할머니가 그 선인장을 사왔을 땐 쓸데없는 걸 사왔다며 할아버지와 다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비단 그 선인장 뿐 아니라, '선인장' 자체를 참 좋아하셨습니다. 할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신 후에도 그 선인장은 여전히 천덕꾸러기로 남아 있었습니다.

게다가, 생전에 할머니가 가꾸시던 것이라 버리지도 못하는 이 선인장은 죽을것 같다가도 살아나고, 살것 같다가도 죽어가는 집안의 애물단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 선인장이 눈에 띌 때마다,"언제 저걸 치우긴 해야 하는데..." 하고 말하는 것은 더이상 특별한 얘기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그 누구도 선뜻 선인장을 버리진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집안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화분들 몇가지를 옥상으로 옮기게 되었습니다. 집안에 큰 어항을 들이면서 자리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천덕꾸러기 선인장은 제일 먼저 옮겨졌습니다. 그리곤 몇달, 몇년을 그곳에 있으면서, 아주 가끔씩만 눈길에 닿았을 뿐이었습니다. 이제, 그 선인장이 할머니 손에 들려 집에 온지도 20 년이 넘었고,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한지붕 밑에 살던 식구들이 지금은 뉴욕, 알라바마, 서울 그리고 제주도에서 각자의 삶을 꾸려 나가고 있으니까요. 할머니의 손자, 손녀들도 벌써 7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어제쯤 이었을 겁니다. 서울의 큰집에서 뉴욕, 알라바마 그리고 제주도에 E 메일을 띄웠답니다.

E 메일의 내용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모두들 눈시울을 붉히고 말았습니다. "할머니께서 들고 오셨던 천덕꾸러기 선인장이 20 년만에 꽃을 피웠습니다. 하늘나라에 계신 할머니께서도 분명 함께 보시며 즐거워 하실 겁니다." 죽을듯 말듯 생명을 유지해오던 천덕꾸러기 선인장의 꽃은 무척이나 신기하게 생겼다고 합니다. 길다란 대롱이 꽃을 피우기 위해 어른 키만큼 치솟 아서는 그곳에서 마치 분수처럼 200 송이의 예쁜 꽃들이 피어난다고 합니다. 선인장 꽃을 처음보는 이웃분들도 모두 신기해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신기함보다도 우리 식구 모두는 '작은것의 소중함'을 배웠습니다.

모두들 천덕꾸러기라며 거들떠 보지도 않던 선인장이, 20 년을 기다린 끝에 모두의 시선을 사로 잡았으니까요. 이젠 그 누구도 천덕꾸러기 선인장을 홀대 할수 없겠지요. 꽃이 진 후에도 말입니다. 이제서야 우리는 할머니가 선인장을 좋아했던 이유를 조금은 알수 있게 되었습니다. 할머니는 오랜 시간이 지난후에야 꽃을 피우는 선인장의 모습을 사랑했던 것입니다. 오랜 시간을 참아내는 그 모습에서, 할머니는 어쩌면 인내하며 살아온 자신의 인생을 보았는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렇게 꽃 피울수 있길 남몰래 소망했는지도 모릅니다.

이제 할머니의 소망은 우리의 몫으로 남겨졌습니다. 그리고 분명, 할머니가 기다렸던 세월만큼이나 아름다운 꽃들이 뉴욕과 서울 그리고 알라바마와 제주도에서 피어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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