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경을 겪은 소녀가 자신의 몸에 대해 경험하는 공포와 수치감을 브라이언 드 팔마의 영화〈캐리 〉보다 잘 형상화한 작품이 있을까. 주인공인 캐리가 돼지피를 뒤집어 쓰는 화면은 갑자기 뒤통수를 한대 맞은 것처럼 아직까지도 아찔하다. 오정희의 단편소설〈중국인 거리〉을 읽고도 그랬다. 여자아기가 초경을 맞으면서 '성장의 문'을 통과하는 것으로 묘사되는 월경은 "정말 파도처럼 밀려온다"는 적나라한 표현을 하고 있다. 원하지도 않았는데 느닷없이 찾아와서 긴 시간을 두고 계속 이어지는 이 런 경험은 공포로 표현되기도 한다.
최근 들어 한국에선 '영페미니스트', '뉴페미니스트', '2세대 페미니스트' 등으로 불리는 이들이 예컨대 위에서 말한 것처럼, 기존의 페미니즘 운동이 다루지 않았거나 금기시해온 '민감한' 문제들을 건드리고 있다. 이들은 다양한 성 담론을 이끌어내면서 남성중심의 사회에 도전하고 있는 것이다. 주로 사이버 공간이나 독립적인 소모임 등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이들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나의 경험을 예로 말해도, 성인여자의 월경 이 달가운 행사인 것만은 아니다. 얼마전 과천세미나 모임에서 여자친구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우스갯소리로 "의학적으로 설명은 못하겠지만 어쩌면 여자들은 월경을 하면서 삶에 대한 태도를 훈련하는 거 아니니?" 댓구하면서, 면 생리대 얘기를 자연스레 꺼냈다. 친구 얘긴 즉, 일회용 생리대가 자극적일 때가 있다는 말을 슬쩍 친정엄마에게 건넸더니 면생리대를 만들어 사용하라면서 엄마가 광목천을 끊어다 주었단다. 그런데 자극성을 피할 요량으로 선택한 면 생리대 www.dhpulp.co.kr www.magicday.co.kr가 이제껏 한번도 가져보지 못한 느낌, 자신이 당연히 가져야 했을 자신의 몸에 대한 자존감을 회복한 얘기를 줄줄이 늘어놨다. 일회용 생리대를 쓸 때에는 그것이 (창피하니까) 안보이게 꼭꼭 싸서 (더러우니까) 쓰레기통에 버리고 얼른 돌아서곤 했다는 것. 한국 여성의 대부분이 이런 경험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친구는 아침 일찍 일어나 면생리대를 하얗게 빨면서는, 내 몸이 이것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라 그릇처럼 사용한다고 생각했다. '내 피를 받아 내가 물속으로 돌려보냈다고.'
한국땅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는 것은 힘들다. 아무리 밀레니엄을 살아가고있다고
에 따르면, 호랑이띠나 말띠 용띠해에 태어난 여자아이는 팔자가 드세다는 이유로 기피의 대상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98년이 호랑이의 해라 선별낙태가 많지 않았다.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지난 90년 여아 100명당 116.5명의 남아가 출생한 이래 꾸준히 줄어들었던 남녀 출생성비가 지난해에는 다시 늘었다. 97년 108.4까지 줄었던 성비가 지난 98년에는 110.2다. 출생성비는 86년 호랑이띠(111.7)와 88년 용띠(113.3), 90년 말띠(116.6) 해에 다른 해보다 유독 높은 형태를 보였다.
5살과 3살된 두 딸을 둔 친구는 딸들을 데리고 길가에 앉아있으면 할머니나 아줌마들에게 공통된 말을 듣는단다. "다음에는 아들 낳아야 되겠네" "작은 애가 하는 짓을 보니 다음에는 틀림없이 아들이겠네" 등이다. "아들은 좋지는 않지만 있으면 든든하다"느니, "하나쯤은 있어도 좋다'"는 격려 아닌 격려도 수없이 듣는단다.
유엔개발계획(UNDP)이 발표한 98년 남녀평등 순위를 보면, 한국은 평가대상 174개국 가운데 38위다. 그리 나쁘지 않다. 그러나 여성의 세력화 순위는 83위로 뚝 떨어진다. 일반적인 남녀평등은 교육수준이나 경제력 등 개인적인 기준으로 평가되는데 반해, 세력화는 의회나 고위공무원, 전문직으로 활동하고 있는 여성들의 비율로 순위가 매겨지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평등이 곧 사회적 평등을 의미하지는 않는 모양이다.
이미경